심리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읽어보라면서 책을 한 권 선물해주었습니다.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날에 받은 책 선물이라 생각지 못해서 더욱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꽤 괜찮은 책이라며 선물해주었는데 사실 바로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심리학 관련 서적들이 인기가 많고 좋은 책들이 많음을 알고 있음에도 바로 손이 가지는 않더라고요. 무언가 제 마음속에 가로막는 가림막이 있는 듯요. 아쉽게도 친구의 마음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전달됩니다. 그동안은 책꽂이에 꽂혀있는 제목을 눈으로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짐만 가져갔습니다. 감정과 관계에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저에게도 마음이 요동칠 때가 있습니다. 사실은 많을 수도요. 책을 뽑아들고 책장을 넘겨보면 책날개 바로 앞에 친구의 메시지에 힘을 얻습니다.
왜 우리는 아픈가
'나'가 흐려지면 사람은 반드시 병든다. 마음의 영역에선 그게 팩트다. 공황발작은 자기 소멸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이 버둥거리며 보내는 모르스 부호 같은 급전이다. 공황발작의 원인을 생물학적 요인 중심으로 판단하면 증상을 없애기 위해 약물치료에 보다 치중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공황발작이 의미하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에 대한 집중과 해결은 놓치기 쉽다. 사람은 나를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에게 끌린다. 사람이 가장 매력적인 순간은 거침없이 나를 표현할 때다. 모든 아기가 아름다운 것도 그 때문이다. 공황발작은 곧 심장이 멎어버릴 것 같지만 절대 멎지 않으며,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생생하지만 물리적으론 절대 죽지 않는 병이다. 공황 발작 자체로 사람이 죽지는 않지만 자기 소멸의 끝에서 탈진한 사람이 스스로 자기 삶을 거둬들이는 경우는 꽤 있다. 심장이 약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워가며 살던 삶의 끝자락에서 더없이 기진맥진해서 생 전체에서 마침내 손을 놓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 내 삶이 나와 멀어질수록 위험해진다.
심리적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공급받아야 하는 산소 같은 것이 있다. '당신이 옳다'는 확인이다. 이 공급이 끊기면 심리적 생명도 서서히 꺼져간다. 사람은 옳기도 하지만 잘못 판단하고 행동할 때도 있는데 어떻게 늘 옳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생길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당신이 옳다'는 말은 그런 현실적 수준의 잘잘못이 아닌 더 근원적 차원에서의 명제다. 네가 그럴 때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너는 항상 옳다'는 말의 본뜻이다. 그것은 확실한 '내 편 인증'이다. 이것이 심리적 생명줄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산소 공급이다.
가장 절박하고 힘이 부치는 순간에 사람에게 필요한 건 '네가 그랬다면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너는 옳다'는 존재에 대한 수용을 건너뛴 객관적인 조언이나 도움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주는 일처럼 불필요하고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고급 정장에 계급장이나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 나를 주목하고 인정해 준 사람보다 내가 맨몸이었을 때 나는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극진히 보살펴 준 사람은 뼛속에 각인된다. 내 존재 자체에 반응한 사람이니 그 사람만이 내 삶에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 약간의 상황적 오해와 착시가 있다 해도 마음의 영역에서 그것은 명백한 진실이다. 그런 사람을 만나야만 사람은 존재의 근원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존재의 근원적 불안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래야 살아갈 힘의 최소한의 안정 기반을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은 누가 죽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그 마음에 대해 자세히 묻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라 여긴다. 아니다. 정반대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심각한 내 고통을 드러냈을 때 바로 그 마음과 바로 그 상황에 깊이 주목하고 물어봐 준다면 위로와 치유는 이미 시작된다. 무엇을 묻느냐가 아니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치유이기 때문이다. 그 행위만으로도 전문가를 만나기 전까지 그를 적극 지켜줄 수 있다. 어떤 경우엔 그 개입만으로도 전문가 없이 내내 목숨을 버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기'를 드러내면, 그러니까 내 감정, 내 말, 내 생각을 드러내면 바로 싹이 잘리거나 내내 그림자 취급만 당하고 사는 삶은 배터리가 3퍼센트쯤 남은 방전 직전의 휴대전화와 비슷하다. 심리적 CPR은 '나'처럼 보이지만 '나'가 아닌 많은 것들을 젖히고 '나'라는 존재 바로 그 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이 위치한 곳은 내 감정, 내 느낌이므로 '나'의 안녕에 대한 판단은 거기에 준해서 할 때 정확하다.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도 감정에 따라야 마땅하다.
빠르고 정확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힘
공감에 대한 오해나 편견은 셀 수 없이 많다. 시간을 아주 많이 낸다면 공감의 극적인 효과를 혹시 볼지도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바쁘고 여유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공감 같은 일대일 아날로그식 소통은 적절한가, 과연 그만큼 효과가 있을까, 그보다는 좀 더 효율적인 소통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조바심이 생길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힘 중 가장 강력하고 실용적인 힘이 공감이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다. 공감은 수십 년간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투입하여 최첨단 의학, 약학, 뇌과학, 생리학, 유전학, 생물학들의 연구 방법론을 통해 개발된 어떤 항우울제보다 탁월하다. 동시에 그런 약물과 다르게 부작용이 전혀 없다. 압도적인 효과가 있는데 부작용도 없으니 비교가 무의미하다.
공감의 원리도 같다. 질문을 통해서 상대의 상황과 마음이 거울에 비춘 듯 또렷하게 보이면 공감은 절로 일어난다. 공감을 받은 이의 속마음은 더 열리기 자기 기억이나. 자기에 대한 느낌들을 더 잘 떠올리고 말하게 된다. 구석구석 비춰주는 거울처럼,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나를 담고 있는 누드 사진처럼 '거부감 들지 않고 다정하게, 그러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공감 유발자다. 자세히 알아야 이해하고 이해해야 공감할 수 있다.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습관이다.
'독서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쁘게 말하는 네가 좋다_김범준 (0) | 2022.11.20 |
---|---|
지식창업 쉽게 성공하기_이우희 (1) | 2022.11.19 |
과학천재의 비법노트_물리화학편 (0) | 2022.11.09 |
체리새우:비밀글입니다 (0) | 2022.11.03 |
습관의 디테일 (1) | 2022.10.21 |
댓글